=Love。
[오토토키/토키오토] 무제. 본문
인간에게는 4번의 생애가 있다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친다면 이번 생은 분명, 정녕 이번이 마지막인 것이다. 그는 그저 깊은 눈동자로 제 앞에 쓰러져 앉아있는 그를 응시했다. 차갑고 냉정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많은 애절함과 절망의 목소리가 그의 검은 눈동자에 꽉 들어차 있었다. 붉게 빛나는 머리카락의 움직임에 맞춰 또르륵 굴러가는 눈빛은 마치 따스하고 보드라운 온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갈구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 행동은 그저 오토야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졌다. 심장 고동소리가 점점 커지고 요동쳤지만 두사람이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벌써 4번째 스쳐지나가기만 하던 부모의 신분과 사상. 고작 그것이 토키야가 역모를 꾸미는 집안의 아들이 된 이유였다. 그가 보기엔 그저 보잘것 없는 이유로 많은 벌써 몇백년째 갈구하던 염원을 해소할 길은 시대의 사상과 주변 인간들의 시선에 의해 높은 성벽으로 막혀버릴 뿐이었다.
역모를 꾸미는 와중에도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적 궁에 한번 들어간 적이 있었다. 길고 인상이 강한 행차에 신기해하면서도 두 황제 부자에 대해 호기심이 일어 살짝 고개를 들어올렸다. 황자의 옆에서 해맑지만 이 나라를 그득히 담고있는 오토야를 본 순간 그렇게 가슴 깊숙히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차라리 보지 않는게 더 좋았을 거라, 이번에도 또 잔혹한 세상이 자신을 가로막는다고. 토키야는 그리 생각했더랬다.
처음에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얄궂은 운명에 내리 가슴을 두드리며 애처로이 눈물만을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눈물은 그의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증오의 용암이 되었고, 이윽고 십몇년이 지난 뒤에야 증오와 슬픔은 차가운 눈이 되어 그의 가슴을 추위에 썩힐 정도로 차갑게 얼렸다.
그들의 오작교를 끊어버린 것은, 처음 생애에선 신분의 차이였다. 두번째 생은 집안 간의 관계였으며, 세번째 생애에는 부득이한 죽음 때문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세 번의 작별을 고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이번에도 토키야는 견딜 수 없는 애처로움에 두손을 잘게 떨며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던, 사랑을 이뤄보겠다던 상대에게 직접 총을 겨누고 있었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도는 그 순간에도 황자의 위엄을 잃지 않는 오토야의 모습에 그는 가슴속 깊이 절망했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한 뒤로부턴 온 세상이 잿빛으로 물들어 제 색을 띄지 못했고, 오롯이 오토야만이 그의 시야에 밝게 빛나는 태양이었다.
어릴 적 처음 봤을 때 해맑게 웃으며 이름을 물어오던 그 작고 귀여운 어린 것이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 한 나라를, 수십 수만명의 백성을 감싸안을 한 나라의 아버지가 되어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었다. 올곧은 눈빛과 자신감이 토키야의 전신에 아프게 휘감겨 총을 들고 있던 손을 무겁게 눌러 내려앉혔다. 바들바들 떨며 시간을 끌던 토키야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세상은 흉흉했고 인심은 날이 갈수록 각박해졌다. 권력자들은 자기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급급해 굶주린 어린 백성들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세금을 늘리고, 그깟 양반이라는 이유로 횡포를 부리며 이 나라에서 그들을 내쫓으려 들었다. 더는 보고 있을수만은 없던 아버지와 그 무리들이 가면을 벗고 역도의 길에 직접적으로 나섰다. 물론 토키야도 그 무리중에 억지로 함께 들어있었다.
“ .... 어째서 바로 죽이지 않아? ”
“ 그건.... ”
토키야가 잠시 뜸을 들였다. 이 생에서는 딱 한번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날의 기억이 있었기에 그는 토키야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한 어른스럽고 푹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와 머리칼, 그리고 따사로운 봄햇살 아래 뽀얗게 빛나던 그의 휜 피부, 아픔을 억지로 견디듯 옅게 보였던 슬프고 애잔한 미소. 그 모습은 그대로 오토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생애에서 절대 잊히지 못할 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 어리던 소년이 이리 자라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 첫사랑에 대한 아픈 추억에 오토야는 주름지려던 미간을 애써 펴보이며 여유를 표현했다.
“ 묻는 말에, 대답해줘. 토키야. ”
“ ....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
“ ... 응. 첫사랑인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잊어. ”
첫사랑. 그 말이 또다시 토키야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적어도 지나쳐온 생애에서는 서로 끝까지 사랑하는 사이로 남았었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달랐다. 몇백년이고 지켜온 자신의 사랑은 끝내 전해보지도 못한 채 종장을 맺었다. 아름아름 고였던 눈물이 이윽고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 .... 토키야. ”
“ .. 죄송합니다. 추한 모습을 보였군요. ”
여전히 총구는 오토야를 향한 채 한손으로 눈에서 배어나오는 눈물을 겨우 훔쳤다. 둘 뿐인 방 너머로 점점 칼소리가 요란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럴수록 토키야는 더 조급해졌다.
4번의 생애 중 마지막 갈림길에 섰다. 차라리 얄궂은 운명을 미워하던 세월이 지금보다 나았다. 설마 제 손으로 정인을 처리하게 될것이라곤 상상치도 못했다고,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오토야를 그저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 토키야, 차라리 지금 날 죽여. 지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네가 아픈 걸 보고싶지 않아. ”
상냥히 웃으며 오토야는 말했다. 그 표정, 그 말이 오히려 토키야의 당혹감을 부추켰다가, 곧 결단을 내린 듯이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며 총을 다시 두 손으로 바로 잡았다.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토키야는 오토야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건넸다.
“ 오토야, 당신도 알 거에요. 태양과 달은 하늘에서 동시에 빛날 수 없다는 걸. 동이 트면 달은 저물어가고, 달이 밝게 빛날 수록 해는 저물어가죠. 그래서 두 별이 없으면 안되었던 이유 였기도 한다는걸. ”
다시 한번 토키야가 슬픈 미소를 띄웠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오토야는 그 미소와 목소리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마음에 담았다.
“ .... 하지만 결국, 그 달도 태양의 빛이 있기에 빛날 수 있었어요. 결국 달이 있든 없든, 태양은 홀로 빛날 수 있다는 말이에요. ”
“ ... 뭐? ”
중간에 오토야가 무슨 소리냐는 듯 끼어들었지만 토키야는 그저 고요한 미소를 짓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총구의 방향이 뒤집혔다.
“ 오토야, 살아주세요.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 곳을 빠져나가서, 당신이 바라고 원하는 세상을 꼭 만들어주세요. 저는.. 지금 보지 않아도 당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어요. ”
“ 아니, 잠깐- .. ”
“ 오토야, 사랑합니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살아있어주길 바라요. 저는 그 모습이면 이제 더이상 필요 없어요. 몇백년간 갈구해왔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으니까. ”
“ ..... 행복해 지세요, 오토야. 마지막으로 건네고 싶은 말은 그 뿐입니다. ”
다음 순간 귀를 찢는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토키야가 오토야의 눈 앞에서 쓰러졌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결국 얻은 것은 연모하던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해사한 웃음을 짓던 오토야도, 방금 전까지 제 눈 앞에서 자신을 죽이라며 쓰게 웃던 오토야의 모습도, 지나왔던 3번의 생애의 그의 모습도 전부 토키야의 기억에서 하나하나 씻겨져 내려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오토야를 지키려 방으로 밀려들어온 황실 군대의 어지러운 발소리를 듣는 것으로, 토키야는 영면에 빠져들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시신의 곁에서 오토야는 그저 아프게 그의 잔해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열린 방문 틈새로 밤바람이 두사람의 곁에 위로라도 하듯 살랑살랑 찾아왔다. 어둡고 차가운 밤이었고, 어디선가 산짐승이 구슬프게 울음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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