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렌토키] 무제. 본문
* 재벌 회장 렌 x 아이돌 토키야
** 글의 모티브가 된 아마츠키 님의 커버곡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걸 추천합니다.
하루하루가 가을 낙엽이 떨어지듯 소리소문 없이 그렇게 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무척 분주해진 진구지 집안을 이제 세 형제가 도맡아 관리하게 되면서 삼남인 렌에게도 막대한 책임감과 중압감이 무겁게 짓눌러 앉았고, 역시 이 이유는 사랑따윈 할 수 없을 정도로 '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 라는 이유를 대기엔 딱 알맞았다. 지친 마음을 달랠 여유도, 그럴 생각조차 없던 렌에게는 연애 또한 사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위안삼아 뿌리쳐 냈던 전 연인인 아이돌의 활동은 뜻밖의 소식이기도 했다. 그와의 마지막은 제 재미없는 인생 속 덮어두고 점점 잊혀져가는 말라가는 꽃잎이었다. 대충 그 날짜와 시간을 짚어가며 얼굴을 찡그린 그는 아무도 없는 서재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 검색창에 조용히 그의 이름 여섯 글자를 띄웠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속사에서 만난 그와는 연습생 시절부터 잘 맞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친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사이였다. 애틋한 시간도, 서로 부딪히고 마음을 나누지 못했던 시간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렌은 쓰게 웃으며 망설임 없이 재생버튼을 클릭했다.
그와 친했던걸 알던 주변인들이 간간히 그의 소식을 전해왔지만 애써 무시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떠나버린 연인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신곡이라고도 한 것 같다. 벌써 그리 헤어진지 몇달이나 지났지만 그 곡의 희생양이 자신이 된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기분이 언짢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여유가 없던 차라 확인하는 것 조차 잊고 있었다며 그는 재생을 시작한 화면을 크게 확대했다. 노래가 시작하자마나 울리는 피아노와 기타의 음이 제 가슴을 아프게 감싸며 맴돌았다. 항상 작사는 본인이 했으니,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그는 화면을 지긋 응시했다. 화면 속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애처로이 흔들렸다.
언제나 그렇듯 선명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는 이 목소리를, 렌도 참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봐 주는 자신이 좋다고 슬쩍 얼굴을 붉히는 토키야.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기억에 렌은 돌연 또다시 실소를 터뜨렸다. 조곤조곤 말을 할 때도, 노래를 할 때도, 언제나 자신을 바라봐주던 올곧은 눈빛과 목소리를 기억하며 그 날의 일을 되짚었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그 때도, 더 이상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를 밀쳐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던 그 날도. 아득히 먼 이야기 같았지만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란 사실이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 조금 더 여유있는 척이라도 하며 그를 봐주었더라면,
네 말대로 조금 더 너를 바라봤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좀 더 제대로 나를 봐 줘, 조금만 더
그 한마디가 너에겐 무거웠던 걸까?
애처로이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사무쳤다. 후회와 통증이 가슴에 물밀리듯 들어차면서, 그런 그에게 질책이라도 하듯 토키야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에 찬 노랫소리가 귓속으로 스르륵 흘러들어왔다. 쓰리렸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일었지만 그리운 목소리가, 자꾸만 자신을 찾는 그 처연한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을 렌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행복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 이제서야 그 사실을 자각한 그도 화면 속의 토키야처럼 표정이 서글퍼졌다. 추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사이 2절로 넘어간 노랫소리가 역시 작은 노트북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 때 문득 생각했어, 나는 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방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토키야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곧 시선을 돌리자 화면 속 그의 옆에 있던 탁자 위, 낯익은 작은 상자가 눈에 띄었다.
건강에도 안좋을 텐데... 도대체 담배는 왜 피는 거에요?
아직 잇치가 어려서 그래, 조만간 알게 될거야.
조금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신의 담배갑을 만지작 거리던 토키야에게 저만의 애칭으로 그를 부르며 어르고 달랬던 기억. 렌의 방황하는 손이 우뚝 멈춰섰다. 분명 토키야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다 알지는 못했지만 차근차근 이제껏 그래왔듯이 알아가면 될거라고. 그리 생각했었다.
가장 처음 떠올랐던 건, 네가 좋아하는 담배의 이름이었어
더 서로를 알아가는, 그 과정에서 어긋나 여기까지 와버린 거라고 두사람은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뒤돌아 보면 렌과 토키야는 서로에 대해 잘 몰랐다. 다음 가사가 그 마음을 적절히 대변해 주었다.
좀 더 제대로 너를 바라보았더라면, 좀 더 제대로
이제와서 깨달아봤자 늦은 거겠지
그가 후회하는 마음이기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이제와서지만 서로의 상처를 좀 더 제대로 알아보고 감싸주었더라면 여기까진 오지 않았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득 깨달았지만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 잘 들어. 인생이란, 자신이 써내려가는 이야기야.
퇴고와 첨삭.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피엔드로 바꿔 쓸 수 있다는 뜻이야. 엄마아빠와 써워서는 안된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싸움과 화해는 한 세트라는 걸,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어 ... 나처럼 싸우고 화해도 못한 채, 더이상 만나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언젠가 읽었던 소설책에서도 그리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실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미 그는 곁에 없었다. 아니, 제 발로 그의 곁에서 떠난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애써 외면하던 진실을 인정하자 더 심한 통증이 일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렌은 눈치 채고도 닦지 못한 체 가슴을 부여 잡았다. 호흡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팠다.
노래가 막바지로 치닫자 서로의 감정이 극에 달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의 너머에 그는 눈을 감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의 향기가 났어, 너의 향기가.
한 모금 마셔보았지만,
결국 재떨이에 비벼 꺼버렸어
담배를 한모금 물었던 토키야가 가사에 나온 대로 재떨이에 담배를 꾹 눌러 비벼버리곤, 탁자에 푹 엎드려 눈물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참고있던 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런 식의 끝맺음은 원하지 않았다. 분명 그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몇백번, 몇천번을 후회에도 그 선택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었다. 수정하지 못할 그 날의 이야기도, 바쁘다는 면목으러 외로움과 자책감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지금까지의 시간도 전부 추억으로 남길 수 밖에 없단 사실을 깨닫자 그는 참고있던 오열을 터뜨렸다. 몇 달이 흘러서야 자각한 이별의 상처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아물게 된다면 분명 튼튼해져 발판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렌은 그저 이 상처가 너무나도 쓰라렸다.
탁자에 엎드려 울고있는 토키야의 심정은 어땠을까. 다시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자신이, 상처를 주고도 그 사람을 돌아볼 용기조차 없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렌은 그리 생각했다.
일정 시간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 노트북의 화면이 꺼지며 그의 서재는 암흑으로 가득 들어찼다. 그 캄캄한 감옥에서 렌은 그저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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