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dear.

* 4기 3화 마이티 편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발걸음이 그저 무겁기만 했다. 그 아이를 보고나니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도, 뱉어보려다가도 저 한 구석에 치워두었던 마음도, 모든 것이 유네의 머리부터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프로젝트 회의가 끝나고 레이징 사무소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에이지와 토키야를 기다리며 그들의 이야기에 문 너머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 ... 처음 만났을 때, 저에게 천재라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천재같은게 아니에요. "

" ... 네? "



또 다시 저렇게.... 이를 악물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 아이와 토키야는 참 많이 닮아있었다. 자신에겐 재능이 없다고, 언제나 노력에 노력을 거듭할 뿐 진짜 천재는 이길 수 없다고. 자신을 낮추는 저 말투가, 태도가 그녀에게도 당사자에게도 큰 상처였다. 물론 그것을 인정하고도 앞을 바라보고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하는 그 모습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말 만으로도 유네는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올라왔다. 좋은 마무리로 끝내고 회의실을 나오는 토키야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아름아름 배어나오는 눈물을 참기위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 ... 유네 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

" 아니, 없었어. 슬슬 저녁 시간이니까 서둘러서 돌아가자. "



원래 둔한 사람이 아니었고, 굳이 말하자면 눈치가 빠른 쪽이었다. 정중히 묻는 그의 말에 유네는 그만 차갑게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감정에 휘둘려서 그에게 상처를 줄 심산은 아니었지만, 그의 얼굴이라도 보았다간 꾹꾹 참고있는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아서 감추기에 급급했다. 



" .... 그런가요. "



수긍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도 분명 뭔가 걸린다는 듯 불편한 감정이 녹아있었다. 토키야가 창문에 비쳐 보인 그녀의 얼굴은 분명 어딘가 상처받은 것만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추궁하지 않고 그저 이유만 되짚어보며 두사람은 사무소로 이동했다. 





*





" 먼저 갈게. 나중에 보자. "

" 유네 씨, 잠시만요. "



역시 고개를 돌린 채 인사만 짧게 건네고 돌아가려는 유네의 팔을 토키야가 다급하게 붙잡고 멈춰세웠다. 그럼에도 그를 돌아보지 않자 토키야는 그녀에게 속삭이듯 작게 말을 건넸다. 



" .... 역시 무슨 일 있으신거죠? 저도 모르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던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

" 토키야. "



그의 말을 끊고 유네가 그를 불렀다. 붙잡힌 손이 잘게 떨렸다. 울고, 있는걸까. 그렇게 생각한 찰나에 유네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금새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이 울먹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기를 바랬건만, 그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었다. 



" 토키야... 제발, 제발... 너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하지 마. 그런 말, 그런 수긍도, 그 태도도... 전부... "

" 유네 씨...? "

" 너한테 줄곧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오토야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무시무시한 천재를 만났다, 고 말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를 보면서. 계속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



그렇게 말하며 유네가 작게 흐느꼈다. 잡힌 손을 뺄 생각 조차도 안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으며 말을 잇는 걸 토키야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 토키야, 확실히 너에겐 처음부터 노래를 잘하고,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을 지도 몰라. 어릴 때 음치였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하지만, 하지만.... 너는, 이제껏, 그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왔잖아.. 

너의 그 꿈이 더 높은 곳으로 뛸 수있는 발판이 되었고, 노력과 열정이 너를 움직일 원동력이 되었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지, 어떤게 자신에게 가장 최선의 노력인지, 고민하고 싸우며 스스로를 갈고 닦아왔어.. 그건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야. 너도 알고 있을 거고. 그래서... 그래서 나는, 너를 재능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 그래, 오토야나 나츠키 같은,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에 왔을 때부터 재능을 갖고 태어났어. 하지만 넌!... 그 재능을, 너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왔잖아...! "

" ...! "



마지막은 유네가 소리치듯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토키야가 살짝 몸을 떠는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담아두었던 것들을 끄집어내었다. 



" 대단해, 정말 대단해.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이 담겨있을까, 네가 아니고서야 우린 전부 다 가늠할 수 없어.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말해줄게. 너 자신이 이제껏 쌓아온 재능을, 그렇게 부정하지 마... "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꼭 자신 때문만은 아닌 것을 알았다. 분명 며칠 전에 마주했던 그녀의 여동생과도 관련이 있겠지. 말을 다 마치고 주저앉아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유네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런 문제라면 이제 아무렴 좋았다. 이렇게까지 생각해주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기쁜 걸까. 처음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다 꺼내 들려주었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토키야는 정말 대단해, 솔직히 그래서 처음에는 너에게 연정을 가지곤 차마 다가갈 수가 없었어. 지금이야... 감정이 흘러넘쳐서 멋대로 내뱉은 것 뿐이지만, 차마 저 높은 곳을 향에 뛰어가는 너의 옆에 당당히 설 자신이 없었는데... 같은 마음이었다고, 그렇게 말해줘서 진짜 기쁘다. 



그래도, 지금은 바쁜 시기니까, 스타리쉬가, 너희가 이번 트리플 S 엔트리 재결승에서 우승하게 되면, 그때 전부 말할 거니까, 몇 번이고, 수도 없이 생각했던 이 말을 직접 들려줄 테니까. 꼭 우승하는 거야. 알았지? 



" 이렇게까지 말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부정하겠어요. 유네 씨, 저 좀 봐주세요. "

" 왜... "

" ... 감사합니다. 오오토리 씨를 만나고, 멤버에게 화를 내고, 그렇게 화해를 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고 해도, 역시 어딘가 불순물이 섞인 듯한 기분이 들었던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지금 유네 씨가 들려준 진심이, 이제까지 빛났던 그 무엇보다도 더 반짝임이 이는 보석으로 바꿔주셨어요. 항상... 유네 씨는, 그렇게... 저를 이끌어 주셨어요. 더이상 이런 일로 힘들어 하지 않을 테니, 울지 마세요, "

" 넌 진짜...! "

" ... 저도, 아직은 전하지 못하고, 전해봤자 유네 씨가 들어주실 리는 없겠지만, 더 높은 곳을, 더 반짝이는 이 마음으로, 당신을 이끌어 드릴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 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

" 알아요, 압니다. 그래서 더 힘을 내겠단 소리입니다. 저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언제나 앞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지켜봐 주시려면, 우선 눈물부터 닦아야죠. 그만 뚝. "

" 너.... 자꾸 어린애 취급하는데 나도 성인이거든? "

" 어린애 취급도 아니고, 유네 씨, 당신 실제로 저보다 한 살 어리시잖아요. "

" 그게 요점이 아니라.... "



진짜 내 취급 너무한거 아니야? 소매로 눈을 쓱쓱 비비던 유네의 팔을 잡고 토키야가 부드러운 손수건을 꺼내 톡톡 눈가를 쳐 닦아내 주었다. 그런 재질로 눈 비비면 눈에 안좋습니다. 잠깐만 가만히 계세요. 하고 상냥하게 잔소리를 해준 그가 마냥 밉지는 않아서 가만히 그의 지시를 따랐다. 



" 정말이지... 그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떡합니까. "

" 눈물 안 많거든?! 자주 안 울거든?! "

" 제 눈엔 정말 자주 우십니다만.. "

" 그건...! .. 네 앞이니까 그런거고... 감정, 주체가 안되는 걸 어떡해.... "



발끈하여 반박하던 유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 모습에 토키야가 후후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얼굴, 빨갛게 됐어요. "

" 시, 시끄러! 노을 때문에 그렇거든! " 



얼굴을 붉히곤 우다다 사무소 건물 쪽으로 뛰어가는 유네의 뒷모습을 보며 토키야는 그저 살풋 미소지었다. 노을이 지는 건너편 하늘이 보랏빛으로 예쁘게 물들었고, 그 속에서 별들이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천천히 뒤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미소가 물웅덩이에 비쳐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